일본의 추락 - 1편

2024. 7. 8. 12:48직장에서 탈출하기/경제이야기

일본 버블 형성

환율과 금리의 극적인 변화가 마켓 전반의 판도를 뒤집었었던 시기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케이스 일 것입니다. 일본 경제를 버블로 이끈 원인으로 1985년 9월에 있었던 플라자 합의를 꼽는데 큰 반론이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만큼 유명세는 아니지만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역시 중요합니다.

 

플라자 합의는 환율 변동이 마켓에 미치는 영향을, 루브르 합의는 금리 변동이 마켓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를 자세히 보기 전에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을 먼저 이해 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1970년대를 "인플레이션의 시대"라고 얘기합니다. 당시 국제유가가 너무 많이 올라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라는 것을 겪었습니다. 한국 경제도 1970년대에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매파 중의 매파 폴 볼커라는 인물이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임명됩니다.

1980년대 초반에 Fed 의장에 취임 후 폴 볼커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폴 볼커는 "경기둔화를 감수하면 물가는 잡을 수 있다"라는 철학으로 불경기가 찾아오면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의 수요가 위축될 테니 물가가 잡힐 것이다. 수요가 줄어들면 물건의 가격(물가)은 당연히 하락합니다. 

->결국에는 소중한 경기를 희생해서라도 단행하겠다는 것이 당시 볼커 Fed 의장의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Fed 기준금리는 20% 가까이 인상됩니다.(기준금리가 20%이면 시중 대출금리는 최소 20%가 넘는다는 의미)

그래서 당시 미국 중소기업의 40% 이상이 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이 많이 무너졌다는 애기는 미국의 실업 문제도 상당히 심해지게 됩니다. 1980년 초반 실업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실업률보다 높았습니다. (참고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실업률이 10%대였습니다.) 당연히 상품에 대한 기업이나 가계의 수요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위축된 수요는 결국 가격 하락 현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과 석유 파동 주범인 고유가가 잡히기 시작하였고 물가 역시 안정되었습니다.(참고로 1970년대 후반 배럴당 4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1986년 초 배럴당 10달러 수준까지 떨어짐)

 

이렇게 물가가 안정된 것은 좋지만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적극적인 감세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물가안정 이후 Fed 역시 높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고요, 이런 경기부양책 효과 덕에 1980년대 중반의 미국 경기는 어느 정도 개선되는 기미가 보였지만, 이런 강력한 경기부양책의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감세를 통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다 보니 미국의 재정은 아주 심각한 적자 상태에 처했고 더불어 당시 자동차 산업 등에 힘을 실으며 본격적으로 수출 성장을 꾀했던 일본과 서독의 부상으로 미국 제조업 분야의 수출은 쉽게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앞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20% 이상 인상하면서 물가 사냥함으로써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게 되므로 달러 가치게 상승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미국 수출 기업의 입장에서 달러 표시 물건 가격이 높아진다는 의미 즉, 수출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 보다 싼 가격에 해외 물건을 수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1980년대 달러 인덱스가격(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 나타내는 지수)이 160까지  올랐습니다.

달러 인덱스

 

당시 일본과 서독의 자동차들은 과거보다 디자인, 성능 개선되었으며 제품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제조 수출은 상당 수준 고전하게 됩니다. 수출이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은 미국의 무역적자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치닫게 됨을 의미합니다. 

정리해 보면, 1980년대 미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적자가 심해졌고 당시 달러화의 강세와 일본 및 서독의 부상으로 수출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무역적자 역시 심해졌습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함께 심각해지는 상황을 "쌍둥이 적자"라고 합니다. 

 

 

플라자 합의

미국은 이런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서독과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언급되며 이슈화합니다. "너희가 미국에 겁나 팔아먹었다, 너희가 하도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바람에 미국의 무역적자도 심화되었고 미국 내 제조업 경기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논리가 나옵니다.(깡패죠? ㅋㅋ 말만 회의지 미국이 집한 시킨 것이나 다름없죠)

그리고 드디어 미국이 1985년 9월 미국에서 있었던 G5 정상회담, 플라자 합의에서 서독과 일본을 손봐주게 됩니다.

당시 G5 정상회담에서 서독과 일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너희 물건을 계속 사주는데 너희는 우리 물건을 잘 안 사준다. 그러다 보니 너희는 계속 과하게 흑자만 내고 우린 계속 과하게 적자만 낸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으니 해결 방안을 주겠다. 일본 너희는 통화 가치를 화끈하게 절상해라!!

 

엔화가치를 절상시키라는 건 엔화 환율을 큰 폭으로 낮추라는 의미입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전후 달러-엔 환율은 달러당 250엔 수준이었는데 1988년 초에는 달러당 120엔 수준까지 거의 50%가량 환율이 하락합니다. 환율이 50% 가까이 하락했다는 의미는 곧 엔화 가치가 두 배 절상되었다는 의미이죠.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사진
달러-엔 환율(출처 : https://ecodemy.cafe24.com/study.html)

 

일본 입장에서 자국 통화 가치가 두 배 절상돼버리니(250엔 = 1달러 하던 게 120엔 = 1달러 돼버리니)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자동차 가격이 수개월만에 두 배로 올라가지게 되므로, 일본 수출품등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 일본 물건보다 더 싼 미국 물건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 당국도 내수경기 활성화를 하기 위한 정책에 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게 하나 있는데 엔화를 두 배로 절상한 의도가 결국에 일본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거였는데.. 문제는 엔화가 두 배로 절상되었음에도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플라자 합의 전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계속해서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합의 이후 대미 무역흑자가 더 증가하지 않았지만 현상 유지 했다는 의미입니다.

-> 플라자 합의를 통한 과도한 엔화 절상은 추가적인 무역적자 증가를 제어하는 효과는 있었으나 누적된 무역적자를 줄이는 효과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던 겁니다.

 

 

루브르 합의

엔화를 두 배 절상시켜도 누적된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으니 미국은  "이제 일본이 미국의 물건을 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이 내수를 키워 미국의 물건을 겁나게 사들인다면 미국이 일본에게 기록했던 과도한 무역적자도 해결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의도 하에 다시 한번 일독과 서독을 프랑스 파리로 불러들입니다. 그게 바로 1987년 2월에 있었던 "루브르 합의"입니다. 루브르 합의에서 미국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동안 환율을 심하게 조정해서 힘겨웠지? 이제 그만할 테니 대신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일본과 서독 당신들의 내수를 키워요 그래서 우리(미국) 물건 좀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루브르 합의 이후 일본은 당시 일본 기준금리였던 재할인율 0.5% 인하했고, 내수 부양을 위한 각종 대책을 도입하게 됩니다. 당시 부동산 경기부양 역시 그중 하나로,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태도 역시 완화적으로 바뀌면서 집 사기 좋은 환경이 펼쳐지게 됩니다. 금리도 낮아지고 엔화 절상으로 인해 수입 물건 가격도 저렴해졌습니다. 그리고 1980년 중후반의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구매력 향상을 야기하였고 부동산 담보대출을 완화하였으니 부동산 쪽으로 자금이 모여들기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주택담보대출비율, 즉 LTV(Loan to Value Ratio)는 120%에 달했다고 합니다. LTV가 120%라는 건 쉽게 말해 1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1억 2천까지 대출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거의 극에 달하기 사작하였고,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문제고, 일본은 세계 최강"이라는 애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본 소비 시장이 상당히 과열이 되기 시작하였고 해외 물건들도 마구마구 사들이게 됩니다. 일본이 내수 버블에 힘입어 미국의 물건을 마구 사주니 오랜 기간 쌓여왔던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도 빠르게 줄어들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크게 감소합니다.

 

결국 미국은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를 통한 금리 인하 및 내수 부양, 이 두 가지 이벤트로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였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버블을 만나고 그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됩니다.
(*무역 불균형이란 특정 국가는 물건을 계속 팔면서 흑자를 쌓고 또 다른 국가는 계속 물건을 사서 적자를 쌓아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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